筆者. 여월
@Ryeo_wol
후쿠자와 유키치는 밤을 걸었다. 이것은 스스로도 기억할 수 없을 정도의 과거로부터 시작되어온 일이다. 무슨 일을 해야 하는지, 어떻게 해야 하는지. 그것에 관해 누구에게도 가르침을 받은 적은 없다. 다만 제 존재의 이유가 그것인 것 마냥 태초부터 몸에 새겨져 있었다. 그러므로 이것은 제 숙명과도 같은 일인 것이다. 이것을 행하는 이유에 대해 의문을 가진 적은 없었다. 그저 이 일은 오로지 자신의 몫이라는 강한 예감만이 뇌리를 찔러댔을 뿐이다. 어쩌면 아무것도 남지 않은 망자의 세계에서 자신이 해야 할 일이 있다는 안도감이었을지도 모른다. 후쿠자와 유키치가 아직 소멸하지 않고 살아있는 이유. 후쿠자와 유키치의 존재의 정당성을 증명하는 단 한 가지. 밤을 걷는다. 죽은 혼들의 길잡이가 되어 그것들 하나하나를 저승으로 이끈다. 밤도 새벽도 아침도 오지 않는, 이승과 저승도 아닌 곳을 떠돈다. 제 존재의 이유를 증명하는 것이므로, 이것은 영원을 선고받은 것과 마찬가지인 것이다.
영혼을 이끄는 과정은 이와 같다. 우선은 ‘분류’를 필요로 한다. 죽은 자의 영혼은 사람의 모양과 거의 비슷한 형태를 띠고 있어 언뜻 본다면 구분하기 어렵다. 따라서 그것의 목에 걸린 명줄로 생사를 구분한다. 죽은 자의 목에 걸린 명줄은 이승에서의 문이 닫힐 때 강제로 끊어져 생전과는 달리 너덜너덜하게 찢겨진 상태로, 대부분은 그것의 훼손 상태로 구분하나 굳이 명줄이 아니더라도 그것들의 얼굴을 살피는 것으로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생기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섬뜩한 창백함과 어느 곳 하나도 응시하지 않고 하염없이 허공을 떠도는, 머무를 곳 없는 자의 시선. 밤을 걷지 않았더라면 제가 지녔을 것이 분명한 눈동자. 혹은 밤을 걷는 지금도.
그러나 자신은 그들과는 다르다. 그저 하염없이 미련에 묶여 같은 곳을 빙빙 맴도는 그들과는 달리 ‘후쿠자와 유키치’는 엄연히 그것들을 이끌어야 하는 사명이 있다. 선택할 수 없었던 스스로의 운명을 거스르지 않는다. 존재를 위한 끝없는 밤을 걷는다.
죽은 것들에게 있어 밤과 낮의 구분은 별 의미 없는 것과 같았으므로 이 일이 행해지는 것이 꼭 밤이라는 조건이어야 하는 이유는 없다. 그러나 만물을 먹어치우는 태양은 떠도는 영혼마저 빛 속으로 집어삼키고서 끝내 소멸시켜버리기에 이승의 빛을 받은 ‘그것’은 없는 것이 되어버린다. 월하의 밤 또한 이승의 것이나 저승의 것들에게 허락된 유일한 것이므로, 여명이 덮쳐오기 전까지는 이승을 떠나야만 한다. 이미 죽은 것들의 또 한 번의 죽음을 막기 위한 일이다. 오직 살아있는 누군가의 기억 속에서만 살며 조각의 영혼조차 영원히 사라지는, 완전한 죽음. 밤을 걷는 것은 그것을 막기 위한 일이다. 이미 생을 다한 자들이었으나 그 또한 떠도는 것에 속하므로, 이것을 감히 구원이라 칭하겠다.
*
정처 없이 세간을 떠도는 영의 명줄을 붙잡는다. 끄트머리에 새져진 ‘그것’의 생전의 이름을 세 번 읊은 후, 명줄을 손가락에 얽는다. 이내 늘어난 줄의 숫자로 복잡하게도 얽힌 그것을 쥐고는, 새벽이 제 몫을 다 할 때까지 그저 걸을 뿐이다. 그것이 있어야 할 곳으로. 안내가 아닌 강제에 가까운 행위였으나 후쿠자와에게 있어 그것은 큰 문제가 되지는 않는다. ‘그자’가 아닌, ‘그것’이다. 그것은 더 이상 사람이 아니었다. 무엇이라 이름붙일 수 없는 무(無)의 존재일 뿐이다. 해서 무료했다. 구원이라 이름 붙였으나 정작 ‘그것’들을 이끄는 후쿠자와는 그 어떤 감정도 느낄 수 없었다. 길을 잃고 하염없이 방황하고 생이 다한 자신을 받아들일 수 없어 울부짖는 영들의 소리를 들을 수 없었다. 명줄을 잡아당길 때마다 목이 졸려 비명을 지르는 영들의 울음소리를 몰랐다. 죽은 것의 목소리는 자신에게 닿지 않는다. 또한 그것의 소리를 들을 수 없었으므로, 그 어떤 동정도 애틋함도 피어나지 않는다. 사자(使者)노릇을 하는 것에 있어서는 축복과도 같은 일이었다. 의미 없는 존재 아닌 존재의 비명과 상흔은 저와는 닿을 수 없는 다른 세계의 일이라 여겼다. 어김없이 찾아오는 밤은 시계가 제자리를 돌듯 무의미한 굴레의 반복일 뿐이다. 그 무엇도 담지 않은 무채색의 걸음으로 밤을 걷는다.
그날은 새벽의 공기가 유난히 스미는 날이었다. 옷자락 너머로 파고든 한기가 무엇도 담지 않은 공허한 가슴을 베어냈다. 걸음마다 턱턱 걸릴 정도로 설운 감정에 파묻힌 거리는 언제나처럼 밤을 함께하는 길동무와도 같았으나 이리도 뿌리 깊은 곳으로 사무치는 날에는 도무지 갈피를 잡을 수가 없는 것이다. 존재의 의미를 거멓게 태워낸 밤은 두렵다. 저도 모르는 새에 무언가가 덩어리째로 빠져나가는 기분이었다. 아릴 정도로 공허한 그 자리를 채웠던 그것이 무엇인지 알 수는 없다. 그러므로 빼앗겨버린 것과 같은 것이다. 되찾을 수 없다고 포기해버린 그것은 어쩌면 애초부터 존재하지 않았던 허상이 아닐까. 같은 곳을 맴도는 허탈함을 껴안고 모든 것을 지켜보았을 달에게 답을 구했으나 달은 그저 제가 존재하는 고고한 자리에서 고요히 빛나고 있을 뿐이었다. 갈 곳 잃은 분노와 좌절을 등에 지고 달을 피해 달아난다.
“그자들이 가엾지도 않아?”
목소리를 들은 것은 달의 눈조차 닿지 않을 정도로 구석진 골목에서였다. 사방이 어둠으로 삼켜져 그 무엇도 보이지 않았다. 짙게 남은 울림의 잔재만이 귀를 두드렸다. 목소리의 주인을 찾아 주위를 살폈으나 여전히 보이는 것은 시꺼먼 암흑뿐이었다. 골목을 벗어나 달빛아래에서 암흑을 더듬자 문득 아래에서 무언가 움틀거리는 인영이 보였다. 그림자를 일렁거리며 희미하게 월하로 드러난 목소리의 주인은 앳되어 보이는 소년이었다. 아니, 소년이 아닐지도 모른다. 얼핏 어린 티가 보이는 그 얼굴에는 시간의 굴레를 짊어진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져 있었으므로 확신할 수는 없다. 그는 무릎을 품에 안고 주저앉은 채 저를 물끄러미 올려다보며 뚱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가득 지쳐있는 표정으로, 그는 다시 한 번 말했다.
“울고 있잖아.”
“무엇이?”
“당신이 쥐고 있는 사람들 말이야.”
사람들. 이 시간의 거리에는 사람이라곤 그 누구도 없다. 허한 거리 위, 생명의 불을 태우고 있는 사람이라고는 눈앞의 남자 하나뿐이었다. 그러나 단 하나의 생명일 것인 분명한 그는 사람들을 말했다. 저가 쥐고 있는 사람. 사람이었으나 더 이상 사람이라 불릴 수 없는 것. 산 자에게 불릴 수 없는 그 무엇도 아닌 존재들. 그러니까, 자신은 그것이라 부르는 것들. 남자는 그것을 사람이라 불렀다. 무엇이라 부를 수 있다는 것은, 그 존재를 볼 수 있다는 말이 된다. 보이지 않는 것이 정상일 터였다. ‘이것’들은 인간에게는 보이지 않는다. 보이지 않으므로 들리지도 않는다. 그러나 소년은 ‘이것’의 울음소리가 들린다고 말했다. 그것이 가엾다고 말했다.
그리고 그것은,
자신을 향해 말한 것이다.
후쿠자와는 그 목소리가 자신을 향해 있다는 일어나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뒤늦게야 알아차렸다. 누군가의 목소리가 저를 향하는 것은 거의 잊힌 감각과 다름없었다. 저와 같은 죽은 자들의 목소리는 자신에게 닿지 않았으며 살아 있는 자들의 목소리는 생생할 정도로 닿았으나 그것은 결코 자신을 향한 것이 아니었다. 그가 말한다. 시선을 마주한다. 답을 말할 수 있는 것은 오로지 자신뿐이다. 낯설다. 그러나 싫지 않다. 이것은 그리움의 감각이다.
“죽은 것의 닿지 않는 목소리에 사사로운 정 따위를 두어야 하는가."
“들리지 않아? 당신도 죽은 사람이잖아.”
후쿠자와는 아무런 대답도 할 수 없었다. 저의 정체를 알고 있으면서도 아무렇지 않게 죽은 사람을 논하는 남자의 정체를 헤아릴 수 없는 것과, 자신 또한 저에게 그것들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 이유를 알 수 없었던 탓이다. 답을 고를 수 없어 입을 닫았으나 남자는 돌아오지 않는 대답에 크게 관심을 두지 않는 듯 했다. 어두운 침묵이 내려앉았다.
구름에 달이 가리웠다. 순식간에 어두워지는 시야 속에서 남자는 몸을 일으켰다. 겨우 인영만이 보일 정도의 어둠 속에서 그는 미동도 않은 채로 그저 무언가를 기다리는 듯 했다. 숨소리조차 내어서는 안 될 듯한 정적에 후쿠자와 또한 숨을 죽였다. 찰나의 순간이 지나고 마침내 가려진 달이 드러나자, 후쿠자와는 완전히 드러난 남자의 얼굴을 두 눈에 새길 수 있었다. 남자는 저 홀로 달빛을 독차지라도하는 듯 아프도록 빛나고 있었다. 감은 눈 끝으로 달빛이 흘러내린다. 그 눈에 머무른 고독과 절망마저 아름다워 보인 것은 필시 월색 탓일 것이다.
남자는 몸집이 작은 편이었다. 몸을 웅크린 탓이라고 여겼던 작은 체구는 그가 몸을 완전히 일으켰음에도 그 전과 별 다를 것 없는 것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작은 새가 맹수 앞에서 몸을 부풀리려는 듯 양 손을 허리에 얹고는 짐짓 근엄한 표정을 짓는 소년의 얼굴이 달빛 아래로 멀겋게 드러난다. 몽환을 펴 바른 듯 신비로움이 묻어나는 소년의 얼굴에 문득 그 또한 이 세상의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습관적으로 목을 살폈으나 소년의 목에 걸려있는 명줄은 조금의 상처도 없이 온전한 채였다.
“그자들이 어떻게 우는 지 알고 있어?”
정신없이 눈에 담던, 처연하게까지 보이던 그 얼굴에는 어느새 장난이 가득 묻어있었다. 그가 말하는 그것들의 ‘울음’을 알 방도가 없었으므로 후쿠자와는 가만히 고개를 저을 뿐이었다. 그는 재미있는 것을 발견했다는 듯 저와 퍽 어울리는 장난스러운 웃음을 띠우고는 귀를 찢을 듯한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다. 아프다. 아프다. 아프다. 절규에 담긴 것은 괴로움이었다. 뇌리를 파고드는 고통의 소리에 후쿠자와는 저도 모르게 눈을 질끈 감아버렸다. 흉내에 불과할지도 모르는 비명이었으나 그 찰나조차 괴로웠다. 남자는 제 목을 움켜쥐고선 손에 힘을 주고 비틀고, 쥐어짜내고, 한껏 졸라댔다. 억겁처럼 느껴졌던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남자는 비명을 죽이며 다시금 장난을 담아냈다.
“어때?”
가면을 감추듯 얼굴을 바꾸고는 마치 칭찬을 바라는 듯한 아이의 눈빛을 자아내는 남자의 표정에 후쿠자와는 속으로 헛웃음을 뱉어냈다.
“들리지 않는 것이 다행이로군.”
“그게 들리지 않는다니 부럽네. 나는…….”
그는 넋을 놓은 듯 하얗게 질린 얼굴이었다. 후쿠자와는 다만 침묵하며 그를 살폈다. 얼굴 위로 드리운 것은 두려움이다. 언제 그랬냐는 듯 거리에는 다시 정적이 내려앉았으나 남자의 비명소리는 뇌리에 남아 끊임없이 되풀이되고 있었다. 흉내가 아니었다. 그것은, 그가 말하는 ‘그자들’의 울음소리가 아닌 엄연한 ‘그’의 울음소리였다. 무엇이 그리도 괴롭고 무엇이 그리도 무서운가. 소리는 귀에 남았으나 그것의 찌꺼기는 가슴에 남았다. 가슴께에 묵직하게 내려앉은 그것을, 과거의 자신은 무엇이라 불렀던가.
후쿠자와는 그의 울음이 오래도록 기억될 것임을 알았다. 이토록 무겁게, 또한 분명하게 내려앉은 이것을 정확한 무엇으로 칭할 수 있을 때까지. 혹은 영원을. 그의 삶에 있어 마지막으로 기억될 단 하나의 사람이라는 것 또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