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의 동백마저 물들이고 싶었다

오자키 코요 X 나카하라 츄야

‌筆者. 럽온탑
@loveontop_bs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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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포트 마피아, 무장 탐정사, 길드. 3사를 둘러싼 분쟁이 서막을 알렸을 때 나카하라는 혀를 내둘렀다. 그가 서방의 분쟁을 6개월 만에 진압하고 돌아온 것이 고작 며칠 전.
 
  제대로 휴식도 못 취하고 전장에 나간다며 가볍게 넘겨짚던 것이 고작 몇 시간 전이었다.
 
  “코요 누님께서 무장탐정사의 인질로 잡히셨습니다.”
차마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기분이 들었다. 나카하라가 당황한 표정이 역력한 저를 보고 쩔쩔매는 부하를 애써 태연한 척 나가보라 지시했다. 거친 일렁임이 몇 번이고 반복됐다. 순간의 틈새를 파고드는 불안감과 불쾌함이 엄습했다.
 
  그가 자리를 박차고 일어섰다. 어찌되었든 보스에게 보고를 해야 했다.
 
  “코요군은 강하니 별 일 없을거야. 너무 걱정하지 말게.”
 
  나카하라가 보고를 올리러다니 모리가 그에게 한 말이었다. 최대한 표정은 감췄는데도 단박에 의중을 알아챈 모리가 대단할 정도로 소름끼친다 생각하며 나카하라가 살짝 인상을 찌푸렸다. 알겠습니다. 감정 없는 어조가 오갔다.
 
  간단한 위로로는 해결되지 않을 무거운 응어리가 느리게 배회했다. 코요가 강한 사람이란 것은 그도 충분히 인지하고 있었다. 인질로 잡혀봐야 손쉽게 탈출해버릴 사람이란 것도.
 
  그럼에도 사실을 넘어서는 어떠한 기분은 명확히 존재했다. 코요의 실력에 대한 의심이 아닌, 단순한 걱정이 이를테면 그러한 것이었다.
 
  나카하라가 기억하는 코요는 언제나 아름다운 사람이었다. 기품 있고, 우아했다. 그는 코요가 저와는 전혀 반대의 사람이라고 언제나 일종의 선을 그었다. 단순한 모습이 아니라 본질적인 성격에서 극명하게 차이가 난다고 여겼다.
 
  제 아무리 값비싼 것으로 감싸도 사람의 본질을 둘러쌀 수는 없는 일이었다. 그래서일까, 나는 누님을-.
 
 
  집무실로 돌아와 그가 의자에 편하게 걸터앉았다. 빙그르르 여유롭게 돌아가는 의자에 몸을 맡기고 마음의 평정을 얻으려 크게 심호흡했다. 저의 눈앞에서 코요가 어른거렸다. 곱게 호선을 그리는 미소가 아름답다고, 그가 무의식중에 중얼거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가 제 옷 주머니를 뒤졌다. 아무래도 튀어 오르는 감정을 분출할 사람이 필요했다.
 
  주머니 속에서 핸드폰을 꺼내들고 나카하라는 화면 속 전화번호부를 뒤적였다. 푸른 고등어. 키패드를 신경질적으로 꾹꾹 눌러대니 한 사람의 전화번호가 나타났다.
 
  전화로 할까, 문자로 할까. 전화라면 일전에 몇 번이고 완벽하게 무시당했던 적이 있었다. 잠시 고민하다 나카하라는 문자를 보내기로 했다.
 
 
  무장 탐정사는 저가 속한 포트 마피아만큼 잔인한 집단이 아니었다. 그의 마음에 걸리는 부분이 하나 있다면 저의 옛 파트너인 다자이가 현 탐정사 소속이라는 것이었다.
 
  나카하라는 다자이가 아직 포트 마피아의 간부이던 시절 우연히 본 다자이를 똑똑히 기억한다. 인질을 고문하던 다자이의 얼굴은 그가 보기에 상황을 즐기는 듯 해맑은 아이의 표정을 하고 있었다. 그 놈은 진정한 미친 새끼야. 나카하라가 고개를 내저으며 다자이에게 보낼 문자를 고심했다.
 
  「네 놈 누님을 건들면 진짜로 죽인다」
  「누님께 허튼 짓 하면 각오해라」
  「누님을」
  「걍 뒤져라 제ㅂ」
 
  몇 번을 지우고 쓰고를 반복하다 그가 결국 핸드폰을 집어던졌다. 감정이 실린 덕에 제대로 작살이 난 핸드폰을 내려다보며 씩씩거리는 폼이 우스웠다. 이까짓 핸드폰 다시 사지 뭐. 그는 왠지 모르게 지금의 저를 보며 신랄하게 비웃어대는 다자이가 존재하는 것 같았다.
 
  한참을 안절부절 못하다 나카하라가 쥐어뜯을 기세로 머리를 거칠게 감쌌다. 이게 대체 무슨 일이냐. 코요가 무사할 걸 알면서도 뻔히 갈팡질팡하는 꼴이 우스웠는지 나카하라가 실성한 사람마냥 웃어댔다.
 
  책상에 축 늘어진 상태로 그가 문득 옛 기억을 떠올렸다. 마피아에게 시답잖은 감정은 필요하지 않다고 말하면서도 어느새 누님을 그린 건 언제부터였을까. 스치는 기억 중에 아주 오랜 추억이 하나 있었다. 어느 겨울날, 저를 보고 환하게 웃어주는 누님이 형용할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다워서, 혹 그 때부터였는지.
 
  나카하라가 오랜만에 기억에 잠겼다.
 
 
 
 
2.
  기억하기로는 분명 열 네 살의 겨울이었다.
 
  오랜만에 눈이 내린다더구나, 어린 나카하라는 코요의 말에 시큰둥하다가 저를 이끄는 코요의 손길을 뿌리치지 않았다. 살짝 삐걱거리는 소리는 내더니 열린 문 틈 사이를 찬 공기라 훑고 지나갔다.
 
  나카하라는 찬바람에 잠시 고개를 숙이며 인상을 찌푸리다 눈이 물들인 새하얀 마당을 발견했다.
 
  “올해도 겨울이 찾아왔구나.”
 
  평소라면 지나쳤을 풍경이 푸른 눈에 담겼다. 가볍게 여기고 말던 무언가가 어느새 소중해져 있다면 이런 것이었다. 누구에겐 그저 세차기만 한 바람이 그에게는 유달리 기분이 좋았다.
 
  그의 열 네 살의 겨울은 매서운 추위가 가득한 계절이었다. 추위에 얼어붙어야 할 시간이 춥지 않았던 이유는 홀로 맞는 겨울이 아니었을 때문이라고, 나카하라가 생각했다.
 
  어린 나이에 갈 곳도 없던 나카하라를 거둔 사람은 코요였다. 지낼 곳이 마땅치 않다면 함께 지내자는 제안을 나카하라는 거절하지 않았다. 순수한 마음이었을 뿐더러 굳이 그가 거절할 이유도 존재하지 않았다.
 
  나카하라는 그 때까지만 해도 코요와 함께 시간을 보낸다는 것을 크게 자각하지 않았다. 작은 시작이 큰 결말을 낳는 걸 이해하기엔 그가 너무 어렸다.
 
  “춥지는 않느냐?”
  “전 괜찮습니다. 누님이야 말로 괜찮으신가요?”
  “나도 괜찮단다.”
 
  코요가 나카하라의 어깨를 자신 쪽으로 천천히 끌어당겼다. 코요의 품에 기댄 나카하라가 고개를 살짝 올려 코요를 바라보았다. 앳된 외모에 편안한 차림. 조직 내에서 개인의 모습을 일일이 기억하는 일 따위는 사치로 여겼으나 단순한 사치로 치부하기엔 열여덟의 누님이 너무 아름다웠다- 그가 변명했다.
 
 
  겨울을 눈에 담으려는 듯 어느새 마루에 편히 앉아 몇 분이고 그 풍경을 감상했다. 고요함만을 품은 눈송이가 하얗게 내렸다.
 
  “그러고 보니 겨울인데도 마당에 꽃이 피었네요.”
  “동백이란다. 이맘때 즈음이면 항상 꽃을 피우지.”
 
  당시에는 눈치 채지 못했지만 나카하라가 회상하기에 그 때의 코요는 조금 슬픈 표정을 짓고 있었다. 어린 나카하라가 멀뚱멀뚱 제 옆의 코요를 쳐다보자 코요가 잠시 놀란 표정을 짓더니 나카하라에게 물었다.
 
  “가까이서 보겠느냐?”
 
  나카하라가 조금 망설이다 고개를 끄덕였다.
 
  코요가 내민 손을 꼭 쥐고 어린 그가 새하얗게 뒤덮인 땅을 밟았다. 뽀드득 거리며 밝히는 눈 소리가 좋았다. 것 옷도 걸치지 않았는데 몸이 따듯해졌다. 마주 잡은 손이 따듯해서일까, 어린 나카하라는 저만의 생각에 부끄러워 얼굴을 붉혔다.
 
  “겨울에 피는 꽃이 이리 붉다니.”
  “그러게요.”
 
  정말이지 고운 색이야. 코요가 작게 중얼거렸다. 피로 물들지 않은 붉음이 조금 낯설다 생각하면서도 묘하게 이끌리는 고운 색이 마음에 들었는지, 나카하라가 손을 뻗었다.
아. 저도 모르게 꽃을 꺾으려다 머쓱해진 그가 어색하게 웃었다.
 
  “동백은 너의 꽃이란다. 마치 석양의 다채로운 색 중 하나인 것이 너와 닮아있지.”
8년 전의 겨울이 생생할 정도로 그의 기억에 스민 순간이 있었다. 어색하게 웃는 어린 그를 보며 작게 웃다가 망설임 없이 코요가 만개한 동백을 하나 꺾었다.
뒤덮은 눈을 조심스레 털어내곤 저의 머리칼에 꽃아 주던 것이 얼마나 와 닿았었던가. 그가 저의 머리카락을 매만져 주곤 우아하게 웃는 모습이 아름답다고 생각했다. 곱다고 말하는 저의 머리칼에 얽힌 꽃보다 누님이 훨씬 고왔지.
 
  다만 그 때의 그 미소는 누구를 위한 것이었나. 그가 한숨 쉬었다.
 
 
 
3.
  몇 번의 계절이 순환해 다시 겨울이 돌아왔다.
 
  코요는 나카하라에게 개인사는 이야기했던 적이 없었다. 몇 년을 함께 지내면서 코요가 저에게 자신에 대한 이야기를 꺼낸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나카하라도 가끔은 코요에 대한 궁금증이 일기도 했으나 코요가 직접 말하기 전까지는 묻지 말자며 호기심을 자주 삭혔다.
 
  나카하라는 저의 가벼운 마음이 코요를 상처 입힐까 두려웠다.
검은 우산 위로 하얀 눈이 녹아내렸다. 몇 년 전, 그 날도 분명 지금 같은 눈이 왔었는데. 나카하라가 우산을 세게 쥐었다.
 
 
‌  누구의 묘인지는 모르지만 일단은 성묘라고 들었다. 나카하라는 코요가 붉은 동백을 한아름 움켜쥐다가 묘비 앞에 내려놓는 것을 지켜봤다. 허리를 살짝 숙인 코요가 눈에 맞을까 나카하라가 코요 쪽으로 우산을 기울였다. 누님, 너무 오래 찬 공기를 마시면 몸에 안 좋습니다. 그가 말하자 코요가 쓰게 웃었다.
 
  “누구의 묘인지는 물어보지 않을 테니?”
  “누님이 먼저 말해주시기 전까지는 묻지 않겠습니다.”
 
  포트 마피아에는 제각기 다양한 사연을 가진 사람들이 모였다. 불행의 인생을 이어온 자가 다반사인 곳에서 개인의 과거를 묻는 행동은 서로에 대한 예의가 아닌 것처럼, 혹은 무관심이란 이름으로 묻지 않는 것처럼 암묵적으로 금지되어 있었다.
 
  그런 일종의 규칙에 녹아들 듯 나카하라도 코요의 과거를 알지 못했다. 저가 조직에 들어오기 전부터 코요가 조직에 몸을 담고 있었다는 것 외에는 달리 아는 점이 없었다. 왜 조직에 들어왔고, 조직에서 지금까지 무슨 일을 겪었는지. 그 누구도 나카하라에게 말해주는 사람이 없었다.
 
  나카하라는 불현 듯 코요가 평소와 다른 무언가를 얘기하리라 직감했다.
 
  “내가 아직 어리던 시절, 나는 조직을 나가려고 했었단다. 내 직속 상사이던 남자 한 명과 말이지.”
 
  물론 거창하게 실패했지만 말이야, 코요의 깔깔대는 웃음이 서글펐다. 조직을 나가려 시도하다 실패했고, 직속 상사는 이미 사망한 사람이었다, 나카하라는 어렴풋이 코요가 어리던 시절에는 모리가 보스에 오르기 전 임을 유추해냈다.
 
  전대 보스의 행동거지와 포트 마피아의 잔인한 방식을 생각해보건대, 누님의 직속 상사였다던 그 사람은 분명-.
 
  “누님.”
  “그렇게 슬픈 표정을 할 필요는 없단다, 츄야.”
 
  이미 지나간 일이라며 저에게 웃어 보이는 누님이 더 서러웠다고 말하려던 것을 억눌렀다. 나카하라가 코요를 따라 애써 웃었다. 말 못할 사정이 있을 줄은 알았으나 그 깊이를 가늠하기는 힘들었던지라 코요의 짧은 몇 마디의 말이 그의 머릿속을 끝없이 떠다녔다.
 
  “그 사람이 과거에 나에게 동백이 좋다고 했었지. 동백의 꽃말이 무엇인지 아느냐?”
 
  고결한 사랑. 나카하라가 언젠가 흘려들었던 말을 중얼거렸다.
 
  “뒤쪽 사회를 누비는 마피아에게 어울리는 말은 아니지만 그의 말이 너무 달아서 잠시 행복했던 때가 있었단다. 지금 와서는 아무 의미도 없었음을 왜 그 때는 알지 못했던지 모르겠구나.”
 
  동백은 사랑하는 사람. 혹은 과거에 대한 미련이었다.
  몇 년 전, 그는 코요와 함께 지내던 어린 시절 중에 동백은 너와 닮았다는 코요의 말을 기억해냈다.
 
  “츄야. 너는 지금의 너로 정말 괜찮은 거니.”
  “저도 이제 막 간부인데 잔인하게 그러지 마세요.”
 
  누님은 저의 어린 시절을 누님의 어린 시절과 투영했구나. 미련이 가득한 동백꽃이 마치 잡지 못했던, 과거의 아름다운 허상과 같아서 그리 예쁘게 웃으셨구나. 하지만 누님, 저는. 나카하라가 억지로 쥐어 짜내듯이 말했다.
 
  “어차피 바꿀 수 없다면 후회하며 살고 싶지는 않습니다.”
  ‌그래, 그렇구나.”
 
  코요가 무언가 다짐한 듯 평온하게 미소 지었다. 돌아가자꾸나. 사뿐히 지르밟은 눈이 여전히 하얗게 남았다. 나카하라는 잠시 고개를 돌려 차분히 놓인 동백꽃을 바라봤다.
 
  붉은 동백꽃에 흰 눈이 덮여있었다.
 
 
 
 
4.
  나중에야 알았지만 다자이가 나카하라에게 장난이 가득 섞인 말투로 “자네 탄생화는 어울리지 않는 동백꽃이라는군!”이라 말했을 때 나카하라는 기함을 내질렀다. 도대체 무슨 뜻으로 저와 동백이 닮았다고 하셨는지, 머리가 지끈거려 그는 곧 생각하기를 그만두었다.
 
  가지지 못할 희망에 대한 미련이라, 나카하라가 옛 기억을 들춰내던 것을 멈추고 작은 소리로 말했다. 적어도 코요에게 동백은 그랬다. 하지만 나에게는…. 나카하라가 깊은 생각에 잠겼다.
  저에게 동백은 어린 날 우연히 만난 코요의 아름다운 미소를 보게 해준 어떠한 것, 고결한 사랑. 감히 저의 감정을 고결하다고 해도 괜찮을지는 모르나- 그는 고결한 사람을 사랑하니 그 감정을 고결하다 표현하고 싶었다.
 
 
 
 
  “저희 쪽도 사상자가 100명이 넘습니다. 짜증나긴 하지만 다자이 놈이 아니었으면 이보다 10배는 넘는 사상자가 나왔을 겁니다.”
  “보스로서, 선대 보스를 뵐 면목이 없군.”
 
  전쟁이 한창이었다. 길드의 무차별적인 공격으로 사상자의 수가 점점 늘어가고 있었다. 금속이 녹슬어 나는 냄새와 온통 피로 검붉게 물든 것이 한 가득이었다.
나카하라는 사망한 조직원들에 대한 애도의 표시로 모자를 벗고 잠시 눈을 감았다. 서둘러 요코하마 일대를 감싼 거대한 항쟁을 끝낼 이유가 늘어만 갔다.
 
  “코요군, 다행히 무사했군 그래.”
  “다자이가 쓸모없는 인질은 필요 없다며 쫓아내서 말이지.”
 
  특유의 우아한 목소리에 나카하라가 뒤를 돌아보니 본부 건물을 들어오는 코요가 있었다. 무사하셨군요. 나카하라가 짧게 인사했다. 짧은 인사로는 건넬 수 없는 일렁임이 계속됐다.
 
  “탐정사가 보내는 다도회의 초대장이라더군.”
 
  코요가 내민 초대장을 받아들고는 모리는 신기한 마냥 살짝 입꼬리를 올렸다. 이렇게 나오셨나. 모리가 초록빛의 초대장을 바라보다 곧 몸을 돌렸다. 그럼 난 나카하라군을 위해 이만 비켜주지. 보스? 당황한 나카하라의 목소리가 크게 로비를 울렸다.
 
  “다친 곳 없이 무사했구나, 츄야.”
 
  코요가 나카하라의 손을 맞잡았다. 따스한 온기에서 새어나오는 다정함이 있었다. 나카하라는 헛기침을 몇 번하다 주위를 둘러봤다. 자리를 지키던 부하들의 시선이 노골적이었다.
  어린 애 취급 하지 마세요, 누님. 나카하라가 슬며시 제 손을 뺐다. 입꼬리에 스민 웃음을 숨기지 못하는 그가 귀엽다 생각되 코요가 한 손으로 입을 가리며 웃었다.
 
  “서둘러 항쟁을 끝내야 할 텐데, 조금 걱정이구나.”
  “걱정 마시죠. 제가 선두에서 노력하겠습니다.”
 
  “그리고, 아직 묻기에 조금 이르긴 하지만 올 겨울은 나와 같이 보내지 않으련?”
  “예?”
  “오랜만에 너와 보는 동백이 그립더구나.”
 
  “누님. 하지만 그, 저도 남자고.” 나카하라가 허둥거렸다.
  “하지만 이전에도 우리 집에서 자주 지냈잖니?” 코요가 물었다. 아니, 그건 그런데. 누님? 어느새 멀어지는 코요를 붙잡으려다 나카하라가 머뭇거렸다. 제 마음을 알기는 하시는 건지, 화끈거리며 열을 올라오는 걸 감추려 그가 얼굴을 제 손으로 가렸다. 아무래도 오늘은 제대로 일에 집중하기는 글렀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 누님.”
 
  호흡을 가다듬고 나카하라가 코요를 불렀다. 고개를 돌리는 코요가 어렸을 때 저가 보았던 누님과 겹쳐보였다고 말하기엔 낯이 뜨거워 나카하라가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무사하셔서 다행이에요.”
 
  이번 겨울에는 둘이서, 동백꽃을 보러가요. 코요가 그 말에 곱게 호선을 그렸다. 아아, 역시. 그 때의 고운 미소와 변한 것이 없었다. 나카하라가 시원스레 웃었다. 저 아름다운 모습이 좋아 얼마나 다시 그 미소를 볼 수 있기를 내심 기다려왔던가. 그 미소가 온전히 나를 향해 주기를 얼마나 바라왔던가.
 
  가능하다면 이제는 당신의 동백마저 나의 동백으로 물들이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