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다 사쿠노스케

筆者. 렛서판다
‌@lET_Sir‌


  10월 26일 : 수영 (Rumex) - 애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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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빠르게 심연으로 잠식되어가는 그를 보고 다급하게 상체를 일으켰다. 아, 다행이도 꿈이었다. 오다 사쿠노스케는 식은땀으로 젖은 잠옷을 벗어 던졌다. 이른 새벽을 가리키는 시계는 빨간 빛으로 껌뻑이고 있었다.
 
 
 
  “비가..”
 
 
 
  얇은 커튼이 살랑거리는 창문 너머엔 가을비가 내리고 있었다. 빗줄기가 약한 것으로 보아 곧 그칠 것으로 보였다. 오다는 힘 빠진 무릎걸음으로 걸어 창문을 힘껏 열어젖힌다. 그제야 비 내리는 소리가 선명하게 들려왔다. 차갑게 부는 바람에 어느새 땀으로 젖어 있던 몸도 차분히 식어 내렸다.
 
 
 
  비가 내리는 새벽, 불도 켜지 않은 컴컴한 방안에서 오다는 잠시 눈을 감아보기로 했다. 벌레의 날개 짓, 하수구로 흘러 들어가는 물소리, 새벽을 맞이하려는 사람들의 각종 소음이 하나 둘 사라지고 이윽고 남는 것은 토독. 토독. 단지 흘러내리는 빗소리뿐이었다.
 
 
 
  그렇게 그는 깜빡 잠에 들고 만다. 창문 바로 옆 벽에 기대어 이따금 튀어 오른 가을비에 살금살금 젖어들면서 그는 방금 전의 악몽을 잊고, 짧은 단 꿈에 빠져든다. 살금. 살금. 가을비에 젖어드는 옷과 같이.
 
 
 
  그가 눈을 떴을 때 시계는 6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아, 이런. 옷이 젖어버렸잖아.."
 
 
 
  창문 근처에 있었던 옷은 이미 축축하게 젖어 있어 오다는 웃옷을 훌렁 벗어 세탁기에 집어넣었다. 반라로 축 늘어지는 발을 질질 끌듯이 걸어 간단하게 아침을 만들어 먹었다. 혼자 살게 되면서 늘어가는 것은 가사 실력과 이따금 느껴지는 외로움뿐이어서, 오다는 그것들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카레가 먹고 싶었다. 엄청나게 매운 카레가.
 
 
 
  그러고 보니 곧 돈을 주러 가야할 시기였다. 달력에 근처에서 굴러다니던 빨간 펜으로 갈 수 있을 가장 빠른 시일에 해바라기를 그렸다. 아이들이 좋아할만한 책과 장난감을 사러 조만간 백화점에라도 가야 할 것 같았다. 얼마나 자랐을까, 그 아이들. 요즘엔 바빠서 만나러 가지도 못했는데 말이야. 오다는 갈 때마다 쑥쑥 자랐던 아이들을 생각하며 웃었다.
 
 
 
  “뭔가 즐거운 일이라도 있는가?”
  “아, 그래 보여?”
 
 
 
  달이 휘영청 둥글게 얼굴을 드민 밤이었다. 어쩌다 자주 가게 되는 주점에 들르게 된 이유는 별것 없었다. 단지 오늘따라 술이 먹고 싶었다. 단지 그 뿐이었는데. 오늘은 드물게도 사카구치와 다자이마저 있었다. 다자이는 어쩐지 즐거워 보이는 오다에게 안주거리를 내밀며 물었다. 그러보고 보면 오늘따라 술이 쭉쭉 들어가는 게, 아까 백화점에서 골랐던 아이들의 선물이 마음에 들었기 때문이 아닐까 하고 그는 생각했다.
 
 
 
  "뭐어, 그런 일 이 있었지."
 
 
 
  오다는 어쩐지 눈을 반짝이며 이런 저런 질문을 쏟아내는 다자이의 목소리를 한귀로 흘려들으며 오늘 산 선물을 어느 아이에게 건네줘야 할까 고민했다. 그러는 사이에도 시간은 흐르고 술은 꼴깍 꼴깍 넘어가고 있었다. 아. 참으로 덧없는 시간이어라. 오다는 그렇게 생각했다. 참으로 덧없는 시간이어라. 입안 가득 들어찬 술이 달면서도 그렇게 쓸수가 없었다.
 
 
 
 
  그 다음날의 그 다음날도 그는 여전히 말단으로써의 잡무를 도맡아 처리하고 있었다. 완벽한 일상이었다. 오다는 담배를 입에 물고 불을 붙이기 위해 라이터를 찾았다.
 
 
 
  "어라,"
 
 
 
  라이터가 없었다. 주머니란 주머니는 전부 뒤져보았지만 소득은 없었기에 그는 머리를 헝클이며 이에 물었던 담배를 다시 집어넣을 수 밖에 없었다. 하늘은 잿빛 먹구름으로 가득차 꿀꿀했고, 담배 피기에 딱 좋은 날씨에, 라이터가 사라져 버려 서글퍼진 그의 심정을 대변하듯 보슬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아, 이런. 그는 혀를 차며 달리기 시작한다. 대충 근처의 편의점에서 우산을 사야겠다고 생각하며.
 
 
 
  때마침 눈에 띈 편의점에서 검은 삼단 우산을 사고 나온 오다의 눈에 문득 바로 옆에 있던 꽃집이 들어왔다. 그리고 그는 내리는 비를 맞으며 꽃을 돌보는 여자에게 자신도 모르게 우산을 기울이고 말았다. 자신이 흠뻑 젖는 것에도 아랑곳 않고 꽃을 돌보는 그 여자에게 그냥 문득 시선이 갔을 뿐이었다.
 
 
 
  “아, 감사합니다.”
  “아뇨. 도와드릴까요?”
  “다 했어요. 감사합니다.”
 
 
 
  제 몸집만한 화분을 겨우 가게 안으로 옮겨내고는 감사하다며 웃은 여자는 주변을 휘휘 둘러보다 아! 하며 비에 젖어 빗방울을 잎에 잔뜩 머금은 꽃한송이를 그에게 건넸다.
 
 
 
  “이건?”
  “답례에요.”
  “아.. 감사합니다.”
 
 
 
  그의 손에 쥐어진 그 꽃은 빗방울을 바닥에 떨구며 잘게 떨리고 있었다. 여자는 금방 가게로 들어가 버려 그는 결국 꽃을 받아들수밖에 없었다. 옹기종이 모여 작고 하얀 꽃을 피워낸 그것들이 나름 어여뻐, 오다는 그것을 바지 주머니에 꽂았다. 우스운 꼴이 되었지만 딱히 들 손이 없었기 때문이라. 우산을 사면서 함께 산 라이터를 꺼내 드디어 담배에 불을 붙인 오다는 문 닫은 가게의 처마 밑에서 비가 내리는 모습을 찬찬히 살폈다.
 
 
 
  담배 연기가 산화해 흩어지며 살며시 마치 안개처럼 그것은 그의 시야를 가리고 있었다. 톡톡 그의 바짓단을 적시는 비가 거센 울음을 토해내며 내리고 있었다. 금방 멎을 것 같지는 않고. 우산이 있기에 딱히 언제 멎든 상관은 없었지만. 빗소리는 계절에 맞지 않게 시원했고 자신이 피워낸 담배의 연기가 비와 함께 어우러져 하늘로 올라간다. 뭐어 이것도 나쁘지 않네. 처마 밑에서 보는 광경치고는 나쁘지 않았다. 그리고 오다는 그 처마 밑에서 담배 다섯개피를 피워낸다.
 
 
 
  집에 돌아와 비에 젖은 옷가지를 빨래 통에 던지듯 넣은 그는 제 바지 주머니에서 빼낸 꽃을 보며 고민에 빠졌다. 이걸 어째야 하나. 시든 꼴을 보기엔 무언가 아쉬워, 그는 결국 물잔에 수돗물을 받아 꽃을 그곳에 넣었다. 그는 그 꽃이 생생하기를 바랐다. 그냥, 그렇다고. 오다는 비에 젖은 머리를 헝클이며 씻기 위해 욕실로 들어간다.
 
 
 
  그리고 또 다시 며칠이 지난다. 그 사이 꽃은 결국 시들어 버렸지만 오다는 여전히 그 꽃을 그 자리에 그렇게 두었다. 시든 꽃을 버리지도 않고, 그 꽃에 주었던 물도 버리지 않고. 마치 그 꽃과 꽃이 담긴 물잔만이 지난 며칠을 비껴지나간 것처럼 시간이 멈춰버린다.
 
 
 
  기실 요 며칠간은 오다에게 있어 바쁜 하루의 반복이었다. 제 멋 모르고 날뛰는 망아지의 처리를 도맡아버린 탓이었다. 그 꽃의 상태를 그렇게 둔 가장 큰 이유는 요 며칠 집은 그저 잠을 자는 용도로 밖에 사용하지 못해 시들어 가는 꽃을 발견하지 못한 탓이었고, 나머지 자잘한 이유로는 시든 꽃임에도 꽃이라는 이유로 삭막한 집을 그나마 환히 밝혀주는 까닭과 제가 그 꽃을 버리지 못하기 때문이었다.
 
 
 
  마지막 이유는 단순했다. 그 꽃의 이름을 그는 이미 알고있었다. 꽃의 의미도, 그 꽃이 10월 26일의 탄생화라는 사실도. 그러한 진리가 바탕에 깔려있으매, 그는 그 꽃을 버리지 못한다. 10월 26일은 그에게 있어 특별한 날이었고 그 특별한 날을 의미하는 것들은 단지 10월 26일을 가리킨다는 것만으로도 그에겐 특별한 것의 범주에 들어서게 되어버렸기 때문이라.
 
 
 
  오다는 그나마 한가해진 하루에 지난 요 며칠을 곱씹으며 건들이면 재가 되어 바사삭 흩어질 꽃이었을 무언가를 그저 빤히 바라보았다. 오른 무릎을 세우고 앉았다. 술이 당기는 날이었지만 술을 마시러 나가는 대신 그는 그렇게 앉아 한참을 꽃이었을 그 무언가를 바라만 본다.
 
 
 
  집에 오면 항상 환기를 하는 오다였지만 요 며칠간 집에 오자마자 쓰러져 누워 자고 일어나 좀비처럼 걸어 바로 일 하기 위해 나갔던 탓일까, 집에선 죽은 꽃의 향이 가득 풍겨나고 있었다. 오다는 잠시 눈을 감는다. 낮설면서도 익숙하고 또 그리운 향이었다. 죽은 꽃의 향이란, 그에게 그런 의미였다.
 
 
 
  비가 오는 날이었다. 오다 사쿠노스케는 가느다랗게 쏟아지는 장대비에 우산도 쓰지 않고 내리는 비에 찬찬히 젖어 가면서 그가 들고온 꽃을 내려놓았다. 비에 젖어 예쁜 꽃잎에는 밧방울이 아롱아롱 달려 있었고 비가 불러온 냄새에 그 꽃 특유의 향은 죽어가고 있었다.
 
 
 
  "토미에."
 
 
  그래, 그 무덤의 주인의 이름이었다. 토미에 야마자키. 그의 옛 벗의 이름이 그러했다. 고운 손을 지녔으면서도 항상 그 손에 어울리는 꽃 향 하나 지니지 못했던 그녀의 삶을 잠시 돌아보다가 오다는 잠시 침묵한다. 쏟아내고 싶은 말이 많았다. 그러나 그는 그것들을 바닥을 설설 기는 빗물과 함께 흘려 보내고 말았다.
 
 
 
  "내가 네게 무슨 말을 해야할까, 모르겠다."
 
 
 
  그리곤 생전 그녀가 좋아했던 담배에 불을 붙여 그녀의 무덤가에 꽂아두곤 그렇게 발걸음을 돌렸다. 비에 젖어 금방 붙은 불이 꺼져 연기가 비와 함께 아지랑이처럼 섞여 사라져가는 광경을 차마 두 눈에 담을 용기가 없었다.
 
 
 
  "좋은 꿈 꾸도록해. 네겐 항상 감사하고 있어."
 
 
 
  10월 26일이었다. 그날은. 토미에 야마자키라는 여자가 죽고 오다 사쿠노스케라는 남자가 태어난 날 이기도 했지. 오다 사쿠노스케는 추모의 의미로 돌아온 차에서 눈을 감았다. 창문 틈 하나 열린 곳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귓가로 세차게 쏟아지는 장대비 소리가 웅웅 울렸다. 아아, 토미에. 지옥에서, 만나자고. 단지 그렇게 약속을 하나 했을 뿐이었다.
 
 
 
  토미에 야마카키란 여자는 그의 삶의 전환점이 되어준 여자의 이름이었다. 그를 낳은 여자는 후미진 뒷골목에 그를 버렸으며 간난아이를 대려다 살인 청부업자로 키워낸 여자의 이름이기도 했다. 온갖 살인 기술을 가리키고 훈련시키고 그 과정에서 얻는 상처를 치료해주고 그에게 책을 읽도록 해주었다. 그리고, 그는 거기서 마지막이 될 그의 전환점을 맞이하게 되었다. 소설가가 되기로, 그렇게 결심했다.
 
 
 
  감았던 눈을 뜨면 죽어버린 꽃이 가장 먼저 보였다. 그리고 새파란 하늘을 투영해낸 창문이, 그의 집이 보였다. 후- 한숨을 크게 쉬며 앞머리를 불어 날렸다. 힘내야지. 그는 소설가가 되기로 결심했다. 살인을 하지 않는 마피아. 며칠 전 그의 친구의 실종이 있었다. 그는 그 친구를 찾아내야 했다. 오랜 시간을 한자세로 있어 굳었던 몸을 풀자 온몸에서 요란스런 소리로 방안을 울린다. 나가야 할 시간이었다.
 
 
 
 
  미믹과의 결전이 있었다. 오다는 제 목숨을 노리고 들어오는 총알을 그의 이능력을 이용해 피하며 한바탕 굴렀다. 모든 병사들이 죽고 마지막으로 남은 것은 그와 미믹의 보스 뿐이었다. 그와 같은 능력을 가진 이능력자와의 싸움은 다른 싸움보다도 더 골치아픈 것이었다. 오다는 그의 이마에 총을 겨누고 그와 대화를 한다. 미믹의 결성 이유, 모두를 죽여야 할 사람이 그가 아니면 안되는 이유, 서로의 미련따위를 이야기 하면서 그는 깨닫고 말았다. 곧 끝이 다가오고 있었다.
 
 
 
  서로를 향해 쏘아 올려진 총알 하나. 탕! 넓은 회랑을 울리는 총소리가 애절했다.
 
 
  “사쿠노스케. 마지막까지 근사한 탄환이로군.”
 
 
 
  그렇게 그는 쓰러지고 저녁 노을이 넘실이는 넓은 회랑에 서 있는 것은 오로지 오다 사쿠노스케 뿐이다. 그러나 그런 그 마저 곧 쓰러지고 말았다. 저녁노을이 하늘을 올려다 보는 그의 얼굴위로 파도처럼 밀려오기 시작한다.
 
 
 
  “오다사쿠!”
 
 
  마지막의 마지막, 그에게 미련이 있다면 그것은 그의 친구를 향한 것이었다. 다자이. 애달픈 그의 외침이 허공을 두드리고 그의 마지막을 쫒아 달려온다. 늘 어깨에 걸친 정장마저 집어 던지고 그의 옆에 앉아 마지막을 쫒아내기 위해 필사적인 그의 친구는 참 슬픈 얼굴을 하고 있었다.
 
 
 
  자신을 보고 흘려낸 피가 잔뜩 묻어난 붕대를 꼭 쥐며 엄청난 바보라고 욕을 하는 그의 친구에게 그는 그저 짧은 신음소리 밖에 흘려내지 못한다.
 
 
 
  “다자이.”
  “네게 해두고 싶은 말이 있다.”
 
 
 
  그의 유언을 듣고 싶지 않을 친구가, 자꾸만 그의 집중을 방해했다. 흐려지는 정신에도 이를 악물고 그는 이제 혼자 남을 그의 친구를 위해 이 말을 꼭 전해야만 했다. 다자이 오사무는 오다 사쿠노스케의 말을 꼭 들어야 했다,
 
 
 
  “들어라!”
  “너는 말했었지? 폭력과 유혈의 세계의 몸을 담구면 살아갈 이유를 찾을지도 모른다고.”
  “찾을 수 있을 턱이 없지! 스스로도 알고는 있을 거다. 사람을 죽이는 쪽이라도 구하는 쪽이라 할지라도 네 예측을 뛰어넘는 것은 나타나지 않아. 너의 고독을 메워줄 존재는 이세상의, 어디에도 없어. 너는 영원히 어둠을 헤매게 될 거다..!”
 
  “오다사쿠..”
 
 
 
  오다는 안개처럼 금방이라도 흩어질 듯 여린 그의 친구의 목소리에 살풋 웃었다. 이제 어쩌면 좋냐는 그의 여린 친구를 위해서 그는 다시금 흐려지는 정신을 다잡는다.
 
 
 
  “사람을 구하는 쪽이 되어라.”
  “어차피 전부 똑같다면. 좋은 인간이 되어라. 약자를 지키고 고아들을 지켜라. 정의도 악도 너한테는 별반 다를 것도 없잖냐. 그러는 삶이, 그나마 조금은 멋질거다.”
 
 
 
  꼭 해주고 싶은 말이었다. 매번 다른 방법으로 자살을 시도하는 그의 친구는 안쓰럽고, 불쌍한 사람이었다. 조금 더 그의 옆에서 지켜봐주고 싶었던 친구였다. 피가 꿀렁꿀렁 새는 바람에 그의 한계는 점점 더 가까이 그를 감싸 안는다.
 
 
 
  오다가 마지막과 싸우는 찰나의 시간에 바람 앞의 촛불처럼 흔들리는 그의 친구가 묻는다. 어떻게 그렇게 잘 아냐고. 참 바보 같은 질문이다. 오다는 그렇게 생각해 웃어버렸다. 그리고 당당한 목소리로 말한다.
 
 
 
  “알고말고. 누구보다 잘 알지. 나는, 너의 친구니까 말이다..”
 
 
 
  “사람은, 스스로를 구제하기 위해서 존재한다. ...인가.”
 
 
 
  확실히, 그럴지도 몰랐다. 그 옛날, 누군가에게 들었던 말이었다. 바람빠진 풍선처럼 웃던 오다 사쿠노스케는 이제 정말 끝이라고 생각했다. 그의 머리를 잡은 손에서 힘이 빠져가고 있었다. 늘 가벼웠던 그의 눈꺼풀이 무거워져 이젠 눈을 뜨고 있는 것이 버거울 지경이었다. 이렇게 죽는 것도 나쁘지 않아. 그렇게 생각했다. 그리고 문득 그는 그의 책상위에서 죽어버린 꽃 한 송이가 생각났다. 10월 26일의 탄생화, 애정이라는 의미를 가진 그 꽃의 이름은, 수영Rumex이었다.
 
 
 
  다음 해 봄이었다. 어느새 파릇한 새싹이 돋아난 봄에, 오다 사쿠노스케라는 묘비 위에 하얀 수영이 곱게 포장되어 놓여진다. 다자이는 잡조 하나 나지 않은 묘비 주위를 한 번, 묘비 뒤로 떠오르는 저녁노을을 한번 바라보며 오랜 잠을 잘 그의 친구가 자리 잡은 언덕의 아래를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활기찬 그의 도시, 요코하마가 한눈에 보였다.
 
 
 
  “다음에 또 오도록 하겠네.”
 
 
 
  그의 친우에게 다음을 기약하는 인사를 남기며 다자이 오사무는 발걸음을 돌린다. 긴 갈색 코트자락이 수영과 함께 산들산들 흩날렸다. 마치 오다 사쿠노스케라는 남자와 꼭 닮은 바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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