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향기는 바람에 날리고

나카지마 아츠시 X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筆者. 無明
‌@mix_darling_max‌


  외로웠다. 좁게만 느껴졌던 집이 어느새 부쩍 넓어졌다. 이 정도면 둘이 살기 딱 좋지 않으냐 말해 주던 목소리가 그립다. 언제나 먼저 내밀어 주던 손도 그립다. 다정하고 낮은, 눈을 감으면 마치 마법을 부리듯 “아츠시.” 부드럽게 불러 주던 목소리. 악몽에 시달릴 때마다 제일 먼저 잡아 주던 주름 많고 꺼칠꺼칠하고 작은 손.
  단둘이 앉아있으면 비좁지도, 널찍하지도 않던 소파는 혼자 앉기엔 확실히 무리가 있었다.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던 공간은 이제 다리를 뻗고 자는 공간이 되어 버렸다.
  이제는 아침에 깨워 줄 사람도, 같이 점심을 먹어 줄 사람도, 주말을 함께 보내 줄 사람도, “다녀왔습니다.” 하고 말하면 “어서 오렴.” 대답해 줄 사람이 없다는 게 뼈저리게 아팠다. 괴로웠다.
  나는 소파에 누워 몸을 웅크렸다. 딱딱하지도 부드럽지도 않은 싸구려 양모(羊毛)가 피부에 닿았다. 여름도 가을도 아닌 애매한 계절은 보일러를 틀기엔 무리가 있었다. 생활비는 조금 더 넉넉하게 쓸 수 있는 형편이 되었지만, 전혀 달갑지 않았다. 나는 몸을 뒤척거렸다. 역시 혼자 쓰는 소파는 발을 뻗고 누울 수 있을 정도로 쓸데없이 넓었다.
  아침에 깨워 주고, 식사를 함께하고, 주말엔 가끔 시간을 공유하고, “다녀왔습니다.” 하고 말할 사람이 필요했다. 소파에 앉아 시시껄렁한 예능 프로그램을 보면서 서로의 취향에 대해 논하거나 식사를 담당할 사람을 정한다거나 집안일을 나눠서 도맡을 사람이 필요했다. 한마디로 말해, 이 썰렁한 공간을 채워 줄 사람이 필요했다.
  굳이 아침에 깨워 주지 않아도 좋다. 식사를 함께하지 않아도 좋다. 주말에는 각자 시간을 보내도 좋다. 사실은 “다녀왔습니다.” 말하면 “어서 와.” 반겨 줄 사람이 그리웠다.
  아아, 그래. 사람이 그리웠다.
  나는 웅크리고 있던 몸을 천천히 들어 올렸다. 등받이에 등을 기대고 손을 들어 올려 손등으로 눈을 덮었다. 무릎 위에 가지런히 올려놓은 반대쪽 손을 이유 없이 꼼질거렸다. 손가락 끝이 차가웠다.
 
  룸메이트를 구한다고 인터넷에 글을 올린 것은 그로부터 일주일이 지난 후였다.
  꽤나 큰 용기가 필요했다. 몇 번이나 글을 쓰고 지웠는지 모르겠다. 나는 모니터와 키보드를 눈앞에 두고 두려움에 떨었다. ‘어떻게 써야 할지 모르겠어.’ 머릿속이 새하얗게 변한다, 는 말을 실감할 수 있었다. 몇 번이고 수정한 글을 가까스로 인터넷에 올렸을 때는 순간, 숨 쉬는 법도 잊을 뻔했다.
  글을 어떻게 썼는지도 모르겠다. 연락처는 제대로 남겼을까.
  나는 초조함에 쫓겨 손톱을 물어뜯었다. 안 좋은 버릇이다.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습관처럼 잘근잘근 물어뜯다가 혀끝에 닿은 비릿한 맛에 번뜩 정신을 차렸다. 잔뜩 물어뜯고 짓눌러댄 탓인지 엄지손톱에서 스멀스멀 피가 배어 나오기 시작한다.
  피! 화들짝 놀라 반대쪽 손바닥으로 엄지손톱을 꾹 눌렀다. 입 안에 남은 비릿한 피맛이 지독할 정도로 역겨웠다. 울렁거리는 속을 억지로 꾹꾹 내리찍었다. 고개를 돌려 두리번거리다가 테이블 위에 놓인 티슈를 발견했다. 급하게 두어 장 뽑아 그것으로 손톱을 눌렀다. 얇은 티슈가 붉게 물들기 시작한다.
  한심하다. 나는 다시 등을 기댔다. 긴장이 풀려 몸이 흐느적거리며 아래로 늘어졌다. 눈을 감았다. 이대로 부족한 잠을 채우면 딱 좋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아마 그랬을지도 모르겠다. 때마침 울린 핸드폰 벨 소리만 아니었다면.
  나는 반쯤 감았던 눈을 도로 떴다. 핸드폰은 저 멀리 떨어진 부엌 테이블 위에 놓여있었다. 언제 저기다 올려뒀더라.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전화가 끊기기 전에 받아야겠다는 생각이 번뜩 들어 몸을 일으켜 세웠다.
  “네, 여보세요.”
  “나카지마 아츠시 씨 되십니까.”
  전화기 건너편 목소리는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콜록거렸다. 금방이라도 숨이 끊어질 듯한 기침 소리에 나도 모르게 “히익.” 소리를 내며 숨을 들이 삼켰다.
  “마, 맞는데요.”
  달달 떠는 수준이었다. 나는 침을 꿀꺽 삼키고 조심스럽게 답했다.
  “룸메이트 구한다는 글을 보고 연락드렸습니다.”
  “아, 네! 맞습니다!” 나는 긴장도 잊고 바로 반색을 표했다. “몇 시쯤 찾아가면 되겠습니까?” 목소리는 조금 갈라진 것도 같았고, 다정한 것도 같았다. 낮고 조용한 편이었다.
  “오후에 시간 괜찮으세요?”
  반면에 내 목소리는 너무 반색을 표한 건 아닐까, 걱정될 정도로 밝았다. 방방 뜨고 있는 느낌이었다.
  “괜찮으시다면 네 시에 찾아뵙겠습니다.”
  “네, 네! 알겠습니다. 그때 오시는 거로 기억하고 있을게요. 네, 이따 뵙겠습니다. 네!”
  전화가 끊어졌다. 나는 내심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목소리만 듣고 상대를 판단하는 일은 실로 어리석은 일이었지만, 느낌이 왔다. 매너 있고, 다정하고, 어쩌면 식사를 함께해 줄 사람이 올지도 모른다는, 그런 느낌. 어쩌면 착각. 그 착각은 나를 들뜨게 했다.
  콧노래가 절로 나왔다. ‘일단 방부터 치워야겠지.’ 몸이 즐겁게 움직였다. 티슈 두 장을 가득 물들인 피는 어느새 멎어 딱딱하게 굳어 있는 상태였다. 붉은색은 옅은 갈색이 되어있었다. 나는 미련 없이 티슈를 떼어 휴지통 안으로 던져 버렸다.
  우선 가볍게 청소기부터 돌리기로 했다. 다음은 설거지. 세탁기도 돌려야 한다. 새로 빨래를 널기 위해선 베란다에 대충 널어 두었던 이전 빨래부터 전부 걷어야겠지.
  할 일이 생기자 기운도 덩달아 돌기 시작한다. 나는 팔을 걷어붙였다. 아주 오랜만에 이 집을 방문할 손님을 위해서.
 
  그러니까…… 내가 바란 손님은 이런 사람이 아니었는데.
  “아쿠타가와 씨……?”
  “네.”
  딱딱하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온통 까만색인 사람이다. 싸늘한 눈빛이 혼을 내는 선생님 같아 나는 손을 앞으로 모았다. 공손해졌다. 그는 기침을 몇 번 내뱉더니 “아쿠타가와 류노스케입니다.” 짤막하게 자신을 소개했고, “22살입니다. 최근에 이 근방으로 발령이 나서 집을 알아보던 중이었죠.” 내 글을 보고 연락하게 된 계기를 설명했다.
  “나카지마 아츠시, 20살입니다. 꽃집을 운영하고 있어요.”
  “아, 혹시 이 건물 1층에 있던……?”
  “아, 네! 맞아요.”
  아쿠타가와 씨는 천천히 집을 둘러보았다. 그것도 꽤 꼼꼼하게. 이것저것 물어보기도 많이 물어보았다. 과묵하리란 내 예상은 완전히 빗나간 것이다. 물음에 하나하나 답해 주면 그는 짧은 감탄사를 뱉으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럼 본가는 다른 지방이신가요?”
  “신칸센으로 두 시간 정도 걸립니다.”
  우리는 집을 구경하며 간간이 서로에 대한 이야기도 나눴다.
  “꽃집을 혼자 운영하고 있어서 아침 아홉 시 삼십 분에 문을 열고 다섯 시에 닫아요. 주말은 쉬구요.”
  “열 시까지 출근해서 여섯 시에 퇴근합니다. 이곳과는 버스로 십오 분 정도 걸리더군요. 마찬가지로 주말에는 쉽니다.”
  “아, 버스 정류장 위치 알고 계세요? 집에서 가까운데.”
  “아아, 네. 저도 버스 타고 왔습니다. 무척 가까워서 이동하기 편리할 것 같던데요.”
  이야기를 나누고 있으니 마음이 편해졌다. 첫인상은 벌써 흐릿해졌다. 한 시간 정도에 불과한 시간이었지만 나는 아쿠타가와 씨가 함께 살아 주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집을 구석구석 살피는 그도 썩 만족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어 내심 기대했다.
  “어떠신가요?” 두근두근한 마음을 억누르고 최대한 차분하게 물었다.
  아쿠타가와 씨는 거실 천장을 한 번, 내 얼굴을 한 번 번갈아 보더니, “계약서는 따로 써야 합니까?” 퍽 진지하게 물었다. 나는 정말이지 그 순간, 그를 꽉 끌어안고 번쩍 들어 올리고 싶었다. 그제야 그에게서 나던 향을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었다. 수선화 향이었다.
  다시 일주일이 지나고 나서야 아쿠타가와의 모든 짐이 도착했다. 이사와 관련하여 몇 번의 만남을 가지는 도중, 우리는 자연스럽게 말을 놓기 시작했다. “나카지마 군.” 은 “아츠시.” 가 되었고, “아쿠타가와 씨.”는 “아쿠타가와.” 가 되었다. 서로를 높이던 말들도 차츰 낮아져,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멍청하군, 아츠시.”
  “말을 똑바로 안 해 준 건 아쿠타가와잖아?”
  같이 사는 지금에 이르러서는 서로 노려보며 으르렁거리는 수준으로 변하고 말았다.
  무뚝뚝하지만 다정하리라 생각했던 내가 바보였다. 나는 숨을 거칠게 쉬며 그를 노려보았다. 아쿠타가와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예민했고, 신경질적이었다. 제 공간을 침범당하는 일을 제일 싫어했다. 물론 억지로 그의 공간을 침범하려고 했던 적은 없다. 결단코!
  “책을 빌렸으면 빌렸다고 말을 해야 할 것 아닌가!”
  아쿠타가와도 지지 않고 나를 노려본다.
  “너 돌아오기 전에 다시 꽂아 놓으려고 했었다니까!”
  “아츠시!”
  물론, 이번은 내 잘못이 맞다. 맞겠지. 목소리를 높여 내 이름을 부르니 잔뜩 힘이 들어갔던 어깨가 아래로 축 처진다. 무어라 변명할 말도 생각나지 않아 고개를 푹 숙였다. 건조한 날씨 탓에 거칠거칠해진 입술을 잘근거리고 있노라면, 아쿠타가와는,
  “이번만이다.”
  한숨을 푹 내쉬고 용서하는 말을 툭 던진다. 그러면 나도 작게 “미안해.” 속삭인다. 다시 따라붙는 아쿠타가와의 한숨은 애써 모르는 척한다.
  “용서해 줘, 아쿠타가와.” 나는 최대한 불쌍한 척하며 입을 열었다.
  “저녁 식사는 네놈이 맡아라.”
  팩 째려보다가 등을 돌려 제 방으로 들어가는 아쿠타가와가 귀엽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 정신 차려야 하는데.
  나는 손바닥으로 뺨을 착! 소리가 나도록 쳤다. 오늘 저녁은 아쿠타가와가 좋아하는 음식으로만 채워야겠다. 그의 화가 조금이라도 더 누그러지기를 바라는 마음에 바치는 일종의 뇌물이었다.
  “어때, 어때?”
  나름 야심작이었는데. 아쿠타가와는 말없이 볼을 우물거리며 음식을 입 안에 넣기 바쁘다. 나는 젓가락도 들지 않은 채, 묵묵히 밥만 먹는 아쿠타가와를 구경했다. 입이 짧아 평소에도 반 공기 먹을까 말까 한 그가 준 대로 묵묵히 먹는 것으로 보아, 썩 나쁘지 않은 모양이다.
  “맛있어?”
  “조용히 하고 먹어라.” 아쿠타가와가 젓가락으로 반찬을 가리키며 말했다.
  “맛있어~?”
  아쿠타가와는 내 얼굴을 슥 보더니 다시 고개를 내려 밥 먹기에 집중한다. 잘 먹는 모습을 보니 괜히 뿌듯함이 몰려온다. 나는 먹는 아쿠타가와를 바라보다가 천천히 젓가락을 들었다.
  “아츠시.”
  “응?”
  어느 정도 배를 채운 모양인지 아쿠타가와가 물잔을 든다.
  “저거.”
  “저거?”
  아쿠타가와가 턱짓으로 가리키는 쪽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등 뒤에는 티비와 티비 타이, 소파, 작은 찻잔 테이블이 전부였다. 나는 무엇을 가리키는지 몰라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다시 돌려 아쿠타가와를 마주 보았다.
  “꽃병.” 아쿠타가와가 말을 덧붙인다. 나는 그제서야 “아아.” 하고 알아챘다. 꽃병은 아쿠타가와가 처음 이사 오던 날에 가지고 온 것이다. 투명한 유리로 만들어진 꽃병은 딱 연필꽂이만 한 사이즈였는데, 예쁜 원통 모양을 하고 있기에 내가 가끔 꽃을 꽂아 두곤 했었다. 꽂아 두는 꽃은 날마다 달랐다. 아쿠타가와는 꽃에 관심이 없는 것 같아 보여 주로 내가 좋아하는 꽃으로 채우곤 했었다.
  “그게 왜?”
  새삼스레 꽃병을 들먹이는 그에게 물었다.
  “꽃 이름이 뭐냐.”
  그 순간, ‘망했다.’ 세 글자가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관심이라곤 정말 티끌만큼도 없는 줄 알았는데!
  “두 종류인 것 같은데.”
  꿀꺽, 소리를 내며 물을 들이키는 그가 이상하게 얄밉다. 본인은 모르고 한 소리겠지만, 나는 지금 일생일대(一生一代)의 고민 중이다. 솔직하게 말해야 하나, 아니면 모를 테니까 거짓말을 해야 하나. 나는 두 가지 선택지를 두고 어느 것을 고를지 심각하게 고민했다.
  “아츠시?” 내 이름을 부르는 그 목소리가 아니었다면.
  “……수선화랑 은방울꽃이야.”
  아쿠타가와가 물잔을 식탁 위에 올려놓는다. 나는 될 대로 돼라, 라는 심정이 되어 입을 맘껏 놀렸다.
  “노란색 보이지? 그게 수선화. 황수선화야. 그리고 옆에 하얀색 꽃이 은방울꽃. 각각 네 탄생화랑 내 탄생화야.”
  대답이 없다. 나는 말을 마치고 나서야 아쿠타가와의 얼굴이 아닌 식탁을 바라보고 있음을 깨달았다. 죄를 고백하듯 이야기하고 있었다. 다시 그를 바라보는 게 퍽 무서웠다. 나는 천천히 고개를 들어 아쿠타가와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아, 말도 안 돼.
  나도 모르게 몸을 일으켰다. 은방울꽃의 꽃말은 틀림없이 행복해진다. 혹은 사랑의 꽃. 의자 다리가 식탁 다리에 부딪혀 덜컥이는 소리를 낸다. 마주 본 아쿠타가와의 얼굴은 분명, 옅은 철쭉과 같은 색을 띠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