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하지만, 평범하지 않은 연애

다자이 오사무 X 나카하라 츄야

‌筆者. 윈터
‌@Wt_1204


  “동백나무 꽃은 질 때 꽃봉오리채로 떨어진다. 그 모습이 사람의 머리와 비슷하다 하여“
  “닥쳐, 그걸 왜 내 앞에서 소리 내어 읽는 건데!?”
 
  거실 바닥에 누워서 리모컨을 꾹꾹 누르며 텔레비전 채널을 돌리고 있는 나카하라의 옆으로 다자이가 꾸물꾸물 기어왔다. 옆구리에 두꺼운 식물백과사전을 끼고서. 나카하라는 그런 다자이를 가볍게 무시하고 계속해서 텔레비전을 응시했다. 다자이는 나카하라의 옆에 앉아서 백과사전을 펼치고는 대뜸 동백나무에 관한 내용을 읊기 시작했다. 뭐 꽃말이라든지, 전설이라든지 이런 것을 읽고 있으면 작작하라는 말만 남겼을 텐데 웬 동백꽃이 떨어지는 모습이 사람의 머리와 비슷하다는 내용을 입 밖으로 내뱉고 있지 않은가. 나카하라는 짧게 피식하며 헛웃음을 짓고는, 제 옆에 놓여져 있는 베개를 들고 다자이를 향해 휘둘렀다. 그러면서 짤막하게 욕을 내뱉었다. 다자이는 그제야 말을 멈추고는 세상 억울하다는 표정으로 나카하라를 쳐다보았다.
 
  “츄야-, 자네 탄생화를 알려주려고 한 것뿐인데 어째서 화를 내는 건가-.”
  “별로 알고 싶지 않거든? 그리고 하필이면 그런 이야기냐?”
  “무슨 문제 있는 건가? 자네가 분명 좋아할 것 같았는데.”
 
  나카하라는 비죽이 웃어보이고는 다자이를 향해서 욕을 줄줄 내뱉었다. 네 놈은 나를 엿 먹이고 싶어서 왜 이렇게 안달이냐는 등 온갖 말을 한참이나 뱉어내고 나서야 멈추었다. 다자이는 싱글벙글 얼굴에 웃음이 만개한 채로 나카하라의 욕을 한귀로 듣고는 한귀로 흘려보냈다. 다자이의 눈에는 그저 나카하라가 귀엽게 보일 뿐이었다.
 
  “뭐, 자네가 내게 노란 장미 백 송이를 주었을 때보다는 낫지 않은가?”
 
  다자이는 나카하라의 말이 멈추자 흐음- 하고서 잠시 뜸을 들이다 입을 열었다. 다자이가 말하는 노란 장미 사건은 다자이의 뜬금없는 고백으로 시작되었다. 두어 해도 더 된 일이었다. 다자이는 매일 같이 나카하라에게 사랑 고백을 해왔고, 나카하라는 매일 같이 그 고백을 거절했다. 하루는 다자이가 제법 분위기 있는 식당에서 진지한 분위기로 고백을 한 적이 있었다. 나카하라는 빙긋 웃으며, 다음날 다자이에게 노란 장미 백 송이를 건네었다. 노란 장미 백 송이는 우리는 인연이 아니다-라는 말도 있고, 보통 노란 장미는 연인끼리 주고받는 일이 거의 없지 않은가. 나카하라는 제법 화려했던 다자이의 고백에 무지하게 화려하게 거절을 한 것이었다. 다자이와 나카하라의 주변인들에게는 그 일을 떠올리면 모두 기억하고 있을 정도로 제법 떠들썩했던 일이었다. 다자이는 여전히 제 방구석에 노란 장미를 고이 모셔두고 있다. 이미 오래 전에 말라버려서 손으로 툭 건드리면 으스러질 정도였지만, 나카하라가 아무리 내다버리라고 귀가 아프도록 뭐라고 해도 다자이는 들을 생각도 않았다. 그 노란장미 백 송이가 나카하라가 다자이에게 준 선물 중 가장 성대했었다며 매일 나카하라에게 선물을 바라면서 줄 때까지 고이 모셔둘 생각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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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츄야- 자네는 나와의 첫 만남을 기억하긴 하는 건가? 츄야의 탄생화 뿐만 아니라 우리는 동백나무와 인연이 깊다고 생각하는데-.”
“알까보냐.”
 
  노란 장미 얘기를 꺼내자마자 나카하라에게 또 얻어맞은 다자이는 맞은 곳을 어루만지며 얌전히 있다가 갑자기 반색을 하며 입가에 싱글벙글 미소를 띠었다. 그러고는 뜬금없이 나카하라와 다자이의 첫 만남을 언급하였다. 다자이의 말대로 둘의 첫 만남은 동백나무와 깊은 관련이 있다고 해도 무방할 정도로 엮인 일이 많다.
 
  둘의 첫 만남을 얘기하려면 칠 년 전으로 돌아간다. 나카하라는 본가에서 들어온 압박으로 제게 맞지도 않는 대학에 들어갔다가 두어 해도 버티지 못하고 휴학을 한 성인이 된지 얼마 되지 않은 나이였다. 나카하라는 애초에 고등학교를 다닐 때 진로 희망서에 그 어떠한 것도 적지 않을 정도로 미래에 대해 일절 생각을 하지 않는 타입이었다.유일하게 관심이 있는 것이라고 한다면 짧은 글들을 끄적이는 것이었다. 블로그에 올린 글들도 제법 평이 좋았던 적도 있었기에 글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그렇다고 해도 글을 쓴다는 것에 진지하게 생각한 적이 없었던 나카하라였기에 그 생각은 얼마 가지 않아 고이 접어 마음 구석에 박아두었다. 그랬던 나카하라가 대학교까지 휴학하고 무엇이든 할 수 있는 것을 찾아야 하는 상황이 오자 생각나는 방법은 글 밖에 없었다. 대학을 다니는 와중에도 조금씩 적었었기에, 나카하라는 아마추어 작가들이 모여 있는 웹 사이트에 한 작품을 연재하기 시작했다. 흔해 빠진 로맨스 소설. 매일 수십 개, 수백 개의 작품이 올라오는 대형 웹 사이트에서 살아남는 것은 여간 쉬운 일이 아니었다. 나카하라는 참신한 내용이라고 할 수는 없었지만, 그 필체는 충분히 독자를 끌어 모을 수 있었다. 반년도 안 돼서 끝을 낸 나카하라의 첫 작품은 제법 성공리에 끝났다. 그 다음 작품은 판타지 요소가 섞여 있는 로맨스 소설이었다. 장편으로 계획하고 있었기에, 제법 공들여 쓴 작품이었다. 두어 달이 지나자 사이트 메인에도 올라갈 정도로 제법 인지도가 올라갔다. 나카하라 자신도 적잖게 놀랐으리라.
 
  이 글이 다자이와 나카하라가 만나게 해주는 연결고리가 되었다. 인기가 많아지자, 책을 낼 수 있는 분량이 넘어가자 출판사 측에서는 바로 나카하라에게 연락을 하였다. 나카하라는 이 기회에 집에서도 인정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여 별 다른 고민 없이 수락하였다. 나카하라에게 연락을 한 출판사는 그리 크진 않지만, 이름이 전혀 없지도 않은. 그런 곳이었다. 이때 나카하라의 담당자가 다자이였다.
 
  다자이는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아버지 아는 분이 일하시던 회사로 들어갔다. 학교에서 소위 영재로 불리었던 다자이였기에, 일은 척척 잘 해내었다. 문제는 끈기가 없었다는 점. 매일 같이 자살을 외치고 다닌다거나, 수시로 퍼질러 자고 있었다. 할 수 있는 것은 많았지만, 하고 싶었던 것은 없었던 다자이에게 나카하라와의 만남은 많은 것을 바꾸었다. 나카하라를 마주하기 전까지는 책을 처음 출간한다는 신인 작가를 맡아 달라고 해서 어떤 사람인지 조금의 호기심만 있었던 다자이였다. 한쪽만 길게 늘여 뜨려진 주황빛 머리칼, 푸른빛이 맴도는 눈 색. 첫눈에 반했다- 라는 말이 가장 잘 어울렸다. 그도 그럴 것이 다자이는 나카하라를 처음 본 순간 요동치는 심장을 주체할 수 없을 정도였으니.
 
  일을 할 때의 다자이는 나카하라가 본 다자이의 모습 중 가장 진지했다. 지금은 그런 모습을 전혀 볼 수 없다는 것에 매일같이 투덜대고 있을 정도이니. 책은 얼마 지나지 않아 무사히 출간되었다. 작가 나카하라 츄야의 이름을 알린 책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판매량은 꽤나 많았다. 나카하라에게 가장 좋아하는 자신의 책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단번에 이 책이라고 대답할 정도로 나카하라는 이 책에 대한 애정이 깊었다.
 
  그 책의 제목은 ‘동백’이었다.
 
  ‘동백’의 책 속에서 동백나무는 주인공에게 가장 중요한 열쇠가 된다. 모든 인연이 이어진 곳이자, 모든 인연이 끊어진 곳이기도 했다. 서장과 종장의 머리말에 동백나무가 언급될 정도였으니.
 
  ‘동백’을 출간한 뒤로 인터넷 소설 작가라고 하면 나카하라의 이름이 거론될 정도로 인지도가 올라갔다. 세계관이 제법 참신했고, 더불어 그 세계관에 자연스럽게 녹아든 로맨스 요소는 충분히 사람들의 호기심을 끌어모을 수 있었다. 이 이후로 나카하라는 ‘동백’의 나머지 내용을 모두 책으로 출간하였을 정도였다. 다자이가 일하던 출판사 역시 이름이 더 알려지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나카하라는 쓰는 소설마다 거의 다 책으로 출간되었는데, 그때마다 다자이와 함께 일을 하였다. 나카하라는 다자이의 성격이 그다지 마음에 들지는 않았지만, 다자이만큼 일을 잘하는 사람이 없었기에 특별히 불만을 토해내지는 못했다. 다자이가 꼭 나카하라와 일을 하고 싶다고 출판사에 부탁한 일은 아직까지도 모르고 있다고.
 
  그 뒤로 얼마 지나지 않아 시작된 다자이의 매일 같은 고백과, 나카하라의 매일 같은 거절이 계속 되다가 결국에는 연애를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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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둘이 연애를 시작하고 사년 쯤 되었을 무렵 나카하라의 생일날에 다자이는 나카하라에게 프러포즈를 했다.
 
  “우리 결혼할까?”
 
  와 같은 말로 툭 내뱉듯이 프러포즈를 할 줄 알았건만 다자이가 준비한 것은 제법 성대했고, 로맨틱했다. 늦은 저녁에 호화스러운 레스토랑에서, 다자이는 뜬금없이 반지를 건네었다. 동백나무의 색과 닮은 붉은 빛과 노란 장미의 색과 똑 닮은 노란 빛이 은은하게 섞인 보석이 박혀 있는 반지였다. 나카하라와 다자이를 이어준 ‘동백’의 마지막 장면과 똑같았다. 남자 주인공이 여자 주인공에게 프러포즈를 할 때에 묘사된 반지와 흡사한 반지였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흔한 프러포즈라고 생각할 지도 모르겠지만, 나카하라에게는 그 무엇보다도 특별한 프러포즈였다.
 
  다자이와 나카하라의 불안한 연애에 나카하라는 불안한 마음을 적잖게 품고 있었다. 하지만, 다자이의 청혼으로 인해 불안한 생각은 말끔하게 사라졌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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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자이와 나카하라의 연애는 하루하루가 사건의 연속이었다. 크고 작은 사건들이 매일 같이 일어났건만, 둘은 아무런 생각이 없었다. 곤란한 쪽은 다자이와 나카하라의 주변인들뿐이었다. 둘과 가까운 사람은 둘의 연애를 보는 것으로 삶의 재미를 찾는다나 뭐라나.
 
  나카하라가 노란 장미를 준 뒤로 며칠 지나지 않아 노란 장미에 보답하겠다며 오피스텔에 사는 나카하라의 집 앞에 동백나무 묘목을 놔두고 간 적도 있었고, 심지어 둘이 동거하고 난 뒤로 그 동백나무를 키우기 시작했다는 점. 둘을 전혀 모르는 사람들이 다자이와 나카하라의 연애를 본다면 나카하라 쪽은 누가 보아도 다자이를 무지하게 싫어하는 것처럼 보이고, 다자이 쪽은 누가 보아도 나카하라를 끔찍이도 아끼는 것처럼 보였다. 그 둘의 근처 사람들은 그런 둘의 불안한 연애를 보고서 반년도 못 넘기고 깨질 것이라고 예상 했건만, 그들에게 보란 듯이 둘의 연애는 오년이 넘었다. 심지어 지금은 다자이의 호화스러운 프러포즈로 약혼까지 한 상태였고, 함께 살고 있는 상태. 매일 같이 싸우면서, 그 누구도 이별의 단어는 입 밖으로 꺼내지 않았다. 다자이만 보면 쉴 틈 없이 욕 짓거리를 내뱉는 나카하라도 무슨 일이 있더라도 이별의 단어는 언급하지 않았다. 애초에 다자이와 나카하라는 사소하게 다투는 일은 많더라도 심하게 싸운 일은 거의 없을 정도로 사이가 나쁜 편은 아니었다. 이미 다자이와 나카하라는 서로가 없으면 안 되었고, 서로의 일상에 이미 깊숙하게 녹아들었다는 것.
 
  평범하지만, 평범하지 않은 연애. 다자이와 나카하라의 연애를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말이었다. 둘은 서로에게 약했고, 서로에게 짓궂었다. 하지만, 그것이 둘의 애정표현이라는 것은 누구보다도 서로가 가장 잘 알고 있었다. 서로의 서툰 마음을 이해하고, 그 모습마저도 좋아하게 된 것이다. ‘동백’이라는 책 한권이 이어준 둘의 인연은 그 어떤 것보다도 질겼고, 그 어떤 것보다도 부드러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