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시

다자이 오사무 X 나카하라 츄야

‌筆者. 빈
‌@been_o3o‌


  편의점 앞에 앉아 간간히 오는 차들의 시동소리나 조금씩 떨어지는 빗방울 따위 소리들을 듣고 있으면 그 날의 그 상황을 상기한다. 눈을 감았다. 애써 상기하지 않으려고 노력해도 자연히 떠오르는 괴로운 기억에 심장 가운데가 욱씬욱씬 쑤셔온다. 너를 다 잊었노라 내 그리 생각했건만 이럴 때마다 눈 아래까지 울컥 치밀어 오르는 이 감정들을 미루어 보면 절대 아니다. 나는 매 순간 너를 잊지 않았다. 잊지 못했다.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면 이제 막 뜨기 시작한 해가 하늘을 벌겋게 물들인다. 그마저도 구름에 가려 잘 보이지 않는다. 그대로 고개를 든 채로 눈을 감았다. 여전히 귓가에 들려오는 빗방울 소리는 애처롭기까지하다. 기억이 흐릿하여 자세하게 기억나지 않는다. 아주 단편적인 기억들이 감은 눈 앞으로 스쳐지나는데 그 장면들은 내 아랫입술을 이로 꽉 물게하기 충분한 그런 장면들이었다.
 
  분명 너와 나는 파트너, 친구 따위로 설명할 수 없는 그런 관계였다. 그렇다고 '연인' 사이였는가- 물어본다면 섣불리 맞노라 이야기할 순 없다. 모호한 관계 그 자체였으니까. 일을 마치고 나면 너와 나는 각자의 집으로 돌아가지 않았다. 항상 너의 집이나, 나의 집으로. 아무것도 맞지 않을 것 같던 너와 나 사이엔 딱 한가지 공통점이 자리잡고 우리를 엮었다. 사무치게 외롭다는 것.
 
  그 사실을 알게된건 달이 휘영청 밝은 날의 어느 선술집 안이었다. 남들이 생각하는 것만큼 비싼 술을 좋아하지 않았다, 난. 자주가던 실내 포차 문을 열고 들어갔을 때 출입문 바로 앞의 테이블에 앉아서 홀로 빈 잔에 술을 따르던 네 모습에 적잖이 놀랐던 것으로 기억한다. 네게 아는 척을 하니 항상 여유롭던 네 눈에 당황스러움과 어떠한 감정들이 한데 섞여 나를 바라봤다. 아무도 같이 마시자 이야기하지 않았음에도 네 앞에 앉아 술을 시켜 스스로 술을 따르고 들이켰다. 서로의 잔에 술을 따라주는 그런 짓들은 일체 하지않았다.
 
  그 때부터 너와 내 사이에 묘한 기류가 자리잡기 시작했다. 사람의 온기가 필요한 우리가 몸을 섞게된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몸을 섞을 때도, 사랑한다느니 서로의 이름을 부르는 행위는 하지 않았다. 그저 계속히 서로의 몸을 안음에도 없어지지않는 외로움에 둘 다 어두운 표정만을 지을 뿐이었다. 내 위의 너에게 입꼬리를 올려 웃는 표정을 지었던 적이 있었다. 그럴 때 너는 미간을 잔뜩 좁히고선 네 그 커다란 손으로 내 얼굴을 가렸다. 시야가 차단되자 생각나는건 오로지 나뿐이었다. 내 얼굴을 덮은 그의 손을 걷어내고 눈을 감은 채 네게 매달렸다.
 
  그런 일상들이 반복되었다. 밤낮 가리지 않고 너와 함께 있었다. 그렇기에 자연히 네게 품은 감정은 '사랑'이다. 너도 내게 같은 감정을 가지고 있으리라 그리생각했다. 너는 내게 집착했고, 나는 네게 집착했으니까. 서로가 옆에 없으면 그렇게도 불안했으니까.
 
  그리 생각하고 나는 네게 말하지 않았던 진심들을 말하려했다. 평소보다 신경써서 나갔고, 내 왼손에는 네 탄생화라던 장미를 쥐고있었다. 네가 내게서 등을 돌릴때 그리 생각했다. 너와 참 잘 어울리는 그런 꽃이라고. 꽃집에서 가시를 제거하지 않았는지 꽉 그러쥐는 내 왼손에선 피가 맺히기 시작했다. 종이로 포장된 꽃다발은 피로 물들어가기 시작했다. 그래. 그 때도 비가 왔었다.
 
  그 기억도 오래되었다. 그 날 이후로 너는 이곳에서 떠나갔으니까. 더 이상 너의 얼굴을 볼 수 없어 정말로 죽은 것인가 그런 생각들을 진지하게 하고 있을 때쯤, 4년 전과는 달리 어떤 소년 옆에서 환하게 웃으며 걸어가는 너를 보았다. 내 두 눈을 의심했다. 내가 방금 본 이가 진정 내가 아는 그 '다자이'가 맞는가. 차마 그 쪽으로 시선을 돌려 다시 확인할 용기는 내게 없었다. 그러면서 내 자신에게 하는 말. 진짜 그 '다자이'면 어쩔건데. 이제와 무얼 할 수 있어. 잡을 거였음, 네 심정을 호소할 것이었음 4년 전 그 날 했어야지. 그 날과 똑같이 왼손을 주악였다. 그 날과 다른 것이 있다면 지금은 왼손에 어떠한 것도 들고있지 않았다.
 
  멈춰섰던 발걸음을 옮겼다. 귓가에 들리던 네 웃음소리도 멀어져간다. 숨이 차오르는 이유는 무엇일까- 사실은 알고 있다. 네가 죽지 않았음에 안도하는 어떤 심정과 나 홀로 너를 보았더라도 다시 만나게된 너에 대한 애틋한 감정, 그리고 그 모호했던 관계로 다시 돌아갈 수 없다는 그런 슬픔 따위의 감정. 울컥 차올라 코가 찡하고 귀가 멍멍하다. 지나가는 이들의 인영은 점점 흐릿하게, 느릿하게 보인다. 눈을 한번 깜빡이자 볼을 타고 내려오는 눈물에 모든 감각들이 되돌아왔다. 이런 내가 안쓰러웠던 것일까, 바보같았던 것일까. 기가 찬 듯 웃었다. 그 웃음은 분명 내 의지가 아니었다.
 
 
  무슨 운명의 장난이었던 건지, 너와 나는 일적으로 부딪히는 일들이 굉장히 많았다. 그런 네 얼굴을 볼 때마다 마주치게되어 재수없다는 듯, 화가난 듯 굴었다. 눈치 빠르고 영악했던 너는 그 시간동안 바뀐 것인지, 아님 정말 모르는 척 하는 것인지 내가 바깥으로 표출하는 그런 감정들에만 대응했다. 둘 중의 어느것이라도 상관 없었다. 너와 그 때의 일, 그리고 아직까지 정리하지 못한 내 감정들을 진지하게 다루게된다면 항상 죽음을 이야기하던 너보다 내가 먼저 죽을 수 있겠다- 그리 생각한다.
 
  난 시간이 지나도 너와 나는 끝까지 동류일 것이리라 그리 생각했다. 네가 언젠가 크게 다쳤다는 소식을 들은 적이 있었다. 그 소식은 네가 가르쳤던 아쿠타가와에게 들었는데, 소식을 듣자마자 가슴이 저 아래로 내리꽂혀지는 그런 기분이었다. 내가 네게 남은 감정은 그리움과 떠나간 너에 대한 원망 뿐이리라 생각했는데 역시 이마저도 빗나가고야 말았다. 너에게 주지 못한 그 때의 그 장미를 그 때의 그 꽃집에서 사 병실 앞에 도착했다. 도착하자마자 발걸음을 다시 돌릴 수 밖에 없었다. 안에서 들려오는 꽤 화기애애한 그런 분위기에 내가 감히 그것들을 깰 수 있을리가 없었다.
 
  발걸음을 떼면서 눈 밑으로 계속히 떨어지는 이것들은 눈물이다. 내 기분과 날씨에는 어떠한 상관 관계가 있는 듯 하다. 항상 이런 날이면 기분 나쁜 가랑비가 떨어진다. 어떻게 벌개진 눈만 수습하면 될 것이다. 나를 위한 배려일지도 모른다. 완전한 외로움이라 생각했지만 아직은 아니다.
 
 
 
  네가 떠나고 한 번도 들리지 않았던 그 선술집엘 갔다. 네가 없기를 기대하면서도 또 네가 있기를 기대했다. 사람이란 존재가 어찌 이리 모순될 수 있단 말인가- 4년 전의 여느 때와는 달리 조심히 열었다. 문 바로 앞의 테이블은 비어있다. 한숨을 내쉬었다. 안도의 한숨인지 아쉬움에서 우러나오는 한숨이지 아님 두 감정이 얽힌 복잡한 심정에서 나온 그런 한숨인지 나도 모른다. 중간 즈음에 테이블을 잡고 앉았다. 바뀌지 않은 사장이 내게 아는 척을 하며 물었다. "왜 이리 오랜만이세요. 몇 년간 오시지 않더니-" 웃으며 대답했다. "일이 바빠서요." "늘 드시던 걸로 준비할까요?" 내가 먹던 메뉴까지 기억하는 사장에 놀란 토끼 눈으로 사장을 올려다보면 말 없이 미소짓는다. "...네." 얼떨결에 그리 달라고 말했다.
 
  4년이라는 시간동안 바뀐 것은 그리 많지 않았다. 내 나이 앞 자리의 숫자가 바뀐 것, 회사 안에서의 직급이 바뀐 것, 사무치는 이 외로움을 혼자 삭힐 요령들을 터득한 것. 내 주위를 둘러싼 것들에 대한 변화들은 분명 존재하고 있었지만 나를 벗어난 아주 외쪽의 것들은 변하지 않았다. 이 곳도 마찬가지고. 의자 등받이에 편안히 등을 기대고 이 곳들을 둘러보았다. 아주 바뀐 것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출입문을 열고 들어와 내가 있는 쪽이 아닌 오른쪽으로 발걸음을 틀면 보이는 인테리어 구조들이 바뀌었다. 자주 오는 이들이라면 반드시 알아챌 정도로. 한 쪽 입꼬리를 끌어올리며 헛웃음을 내뱉었다. 역시 변하지 않는 것은 없다.
 
  오랜만에 먹는 사케는 썼다. 바로 일주일 전까지 먹던 양주들에 비하면 그리 쎈 술이 아님에도 썼다. 나를 두르고 있는 이 감각들과 감정들은 오로지 네 중심으로 흘러간다. 4년 전부터 지금까지. 쓴 맛에 눈을 감고 미간을 찌푸리면 감은 눈 앞으로 또 다시 너란 환상이 지나간다. 당연히 눈을 떴을 때, 너는 없다. 내겐 그 사실이 또 비참하게 쓰다. 다시 병을 들어 방금 비웠던 잔을 채우려니 뚝 떨어진 술. 오른쪽 손을 들어 술을 한 병 더 달라했다. 기분이 좋다는 말을 들을 만큼 고조된 목소리로.
 
  울고싶었다, 어떠한 상황에 닥쳐서가 아닌 오롯이 내 감정변화에 맞춰서 울음을 끄집어내고 싶었다. 쉽게 되는 법이 없었다 땅 끝까지 파고드는 내 우울들에 반해 계속해서 올라가는 기분들은 더 없이 우울하게 만들기 충분했다. 자꾸만 입가에 걸리는 미소를 건 채로 네가 일하고 있다던 곳을 찾았다. 이름 한 번 별로라 생각했다. '무장 탐정사' 라니.
 
  술을 아무리 마셨어도 당당하게 문을 박차고 들어가면 안된다는 것 정도는 인지한다. 사실 그리 많이 마신 편이 아니었다. 딱 세병 마셨으니, 많이 마시지 않았다. 늦은 밤이라 네가 있을 것이라는, 이 곳을 지나칠 것이라는 생각과 기대를 일절 하지 않은 채로 찾아왔다. 그냥 궁금했다. 너를 변하게 한 이곳이 어떠한 곳인지. 분명 네가 몸담았던, 지금까지도 내가 몸담고 있던 곳과는 확실히 다른 곳이다. 낮은 건물 중의 한 층만 쓰는 듯했으며, 평수도 그리 넓어보이진 않는다. 외관 상으로는 전혀 나은 것이 없어보인다.
 
  역시 그 안의 사람들 덕분인가 생각하게 된다. 한 편으로는 그저 그 사람들에게 맞추기 위해 제 외로움을 다 묻어두고 연기를 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역시 아니다. 못난 나는 어김없이 네 행복들을 폄하하기 시작했다. 사실은 아닐거라고, 여전히 너는 나와 동류라고.
 
  술 기운 때문인지 비틀거리는 무릎을 부여잡고 그 곳에서 발걸음을 떼었다. 지금 내가 가는 곳은 내 '집'이란 곳은 결코 아니다. 그럼 어디엘 가고 있을까. 아무 생각 없이 그저 두 발이 이끄는 대로 걸었다. 나도 모를 그 목적지로 향하는 길은 몹시 익숙한 거리에 간판 투성이다. 내 스스로 어디엘 가고 있는지 모른다 그리 얘기하지만 사실은 알고있다. 이 내 두 손으로, 두 발로 사무치는 외로움을 견디지 못한 채 숨을 거두려는 것이다. 이번엔 자의로 계속해서 걷던 두 발을 멈추었다. 당연히 멈추어섰다.
 
  항상 이런 기분일 때 흐리고 비가 왔던 것에 반해 오늘은 구름 한 점 없는 그런 밤하늘이다. 달도 별도 밝게 반짝이는 그런 밤이다. 우습게도 그런 밤하늘을 보면서도 네 생각을 했다. 계속히 나를 이리 괴롭게 하는 존재는 너임에도 불구하고 너를 사랑했다. 내가 네게 주려했던 그 장미는 참으로 너와 잘 어울리는 꽃라 생각했다. 어찌 그런 날에 그런 이가 태어났을까. 계속히 하늘을 보면서 멈추었던 발걸음을 떼었다. 밤 공기는 차고 묵직했다.
 
  하늘을 올려다보던 고개를 다시금 땅으로 떨어뜨렸다. 옅게 비추는 가로등 불빛에 비치는 내 그림자는 우울하다. 방금과는 상반된 분위기의 장면이 다시 나를 하여금 눈물짓게하기 충분했다. 여러가지 생각들이 나를 괴롭힌다. 이대로 끝내지 않으면 계속해서 가시에 찔려 아프게 될지라도 그 황홀한 외관과 향들을 맡을 수 있을 것이며 이대로 끝낸다면, 더 이상 어떤 생각을 하지 않기로 했다. 눈을 꽉 감았다가 뜬다. 한동안 멈추어섰던 발걸음을 다시금 옮겼다.